할리 데이비슨#Harleydavidson의 개조된 폭주족이 인상적으로 등장한 1969년 최고의 문제작<이지 라이더, Easy Rider>의 주연 배우이자 작가이며 제작까지 맡은 ‘폰다가 이방인’피터 폰다(Peter Fonda, 1940~2019)이 격정적인 80년에 가까운 생활을 마쳤다. 그는 죽었지만 우리에겐 꿈이 있었다. 70년대 말 80년대 초 그 격정의 시대를 살아 본다면 우리가 꿈꾸던 ‘통제되지 않는 자유’를 꿈꾸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기성세대) 히피 #Hippie 와 같은,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잡초같은 더러운 근성의 “보헤미안” #Bohemian 같은 집시 #Gypsi로 단정 짓기 일쑤였다. 기성 세대와 우드스탁#Woodstock세대(1969년 죠은・로바ー토・, 조엘 로젠이 ‘캐피털 레코드사의 부사장의 아ー티콤필도우, 바로 전해인 1968년”마이애미 팝 페스티벌”을 주도한 마이클 렌 등이 주도한 순수 시민 록페스티발에 처음에는 대인 관계, 18달러라는 입장료를 받았지만 일시에 매진 사태가 일어나고 결국 안전과 록음악의 보급 때문에 무료로 개방했다. 그 해 8월 15일부터 8월 17일까지 3일로 예정된 공연했다 결국 처음으로 록의 무대에 등장한 천재적인 흑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Jimihendrix의 공연이 길어지면서 18일 오전까지 축제가 열리고 결국 4일 동안 2백만명을 넘는 젊은이들이 모여서 사상 최고의 야외 공연에서 지금도 거론되고 있다. 짐 헨드릭스와 ‘도어스’ #Thedoors를 이끄는 짐 모리슨 #Jimmorrison , 여성 블루스 로커, 제니스 조플린 #Janisjoplin 등도 이때 본격적으로 등장했으며, 바로 짧은 음악 활동에도 불구하고 임팩트 있는 록 뮤지션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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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임료프의 폭발하는 젊은이들의 주체 못하는 에너지는 결국 할리우드에도 영향을 미치며, 작가 주의 경향의 신선한 연출가들이 다수 등장했지만, 그 대표적 인물이<체이서, The Chaser, 1966년>와<우리에겐 내일이 아니고, Bonnie and Clyde, 1967년>의 아더 펜#Arthurpenn,<누가 버지니아·울프를 두려워하거나, Who's Affraid of Virginia Wolf, 1966년>의 마이크 니콜스,#Mikenichols, 그리고 스튜어트 로젠버그가 연출하고 폴 뉴망#Paulnewman에 스타성을 일깨우고 준 범죄 영화<폭력 탈옥, Cool Hand Luke, 1967년>, 이어 전설적인 미국 배우 헨리 폰의권다 #Henryfonda 의 아들인 피터 フォン폰다 #Peterfonda 였다. 이미 할리우드 내에서 힘든 입지를 굳히고 있었다. ‘폰다 집안’#Fondafamily의 제인·폰다, 자신의 딸인 브리짓·폰다#Bridgetfonda는 후일 할리우드의 역동적인 장르물과 멜로, 혹은 청춘 드라마에서 모 바리 모아 가문’,#Barrymoreroyalfamily ,’렛도그레ー브 가문’우드 스톡 페스티벌이 열리기 직전인 1969년 7월 콜롬비아의 자금 조달은 받았지만 생각보다 예산이 적게 들어왔던 데니스 호퍼#Dennishopper가 연출(그는 시나리오 작업에도 관여)과 주연을 제작과 각본, 그리고 공동 주연을 맡은 피터 폰다의<이지 라이더, Easy Ryder, 1969년>은 충격적 결말에도 불구하고”뉴 아메리칸 시네마”#Newamericancinema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공전의 히트작이 미국 영화사에 남는 명작인 것은 물론 세월이 20년 후 재평가되면서 지금은 타계한 데니스 호퍼, 잭 니콜슨#Jacknicholson(그는 아주 짧게 등장했지만,’연기는 이런 것이다’라는 인상을 보이며 앞으로 할리우드를 대변하는 최고의 배우로 거듭나는 계기가 이 작품이었다), 그리고 오늘 79세의 나이에 폐 암을 이기지 못하고 아버지의 헨리 폰다(Henry Fonda, 1905~1982)곁에서 영원히 떠난 피터 폰다의 필생의 연기가 있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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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배우 겸 연출가인 앨런 서머스는<이지 라이더, Easy Rider, 1969년>으로 잘 알려 진 피터 폰다가 향년 79세를 일기로 눈을 내렸다고 연예 매체의 가디언을 통해서 알렸다. 가디언에 따르면 폰다는 오늘날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자택에서 폐암으로 심부전증을 앓아 가족들에게서 보내온 이메일로 접하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피터·폰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공유하는 것을 깊은 슬픔과 함께 합니다”라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의 언니이자, 미인 여배우이며, 오스카상을 두 번이나 받은 제인·폰다 #Janefonda는 私は나는 많이 슬프다. 그는 나의 착한 동생이었다. 나는 지난 며칠 그와 단둘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웃으며 나갔다”며 동생과의 지난번 불편한 시간에 대한 슬픔을 토로했다. 폰다의 죽음을 지켜본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성, 마약. 록큰롤 그리고 개방된 도로의 자유를 기념하는 친구의 필름’과 그의 역작인<이지 라이더, Easy Rider, 1969년>에 대해서 평가했다. 한편, 타계한 피터 폰다는 2007년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지 라이더를 위해서 일을 멈추지 않았다”라고 할 만큼 자신의 연기 인생에 가장 영향을 끼친 작품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남겨진 가족은 “이지” “라이더”에서 피터 フォン폰다가 외친 대사 중 하나인 “자유를 위해 잔을 옮겨 달라”고 말하며 마지막을 떠난 고인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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